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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관리자 2017-09-14 426
경향신문 : 성폭력상담소 후원이 성폭력범의 '양형 참작'사유? "재판제출 목적 기부 사례 100건"
ㄱ씨는 2014년 5월 서울지하철 5호선 열차에서 한 여성의 치마 밑에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이밀었다. 휴대전화에는 카메라 기능이 켜져 있었고 여성의 허벅지와 속옷 부분이 촬영됐다. 경찰에 붙잡힌 ㄱ씨의 휴대전화에는 또다른 피해 여성 2명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ㄱ씨는 2014년 10월 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를 통해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고 2015년 2월까지 5차례에 걸쳐 신용카드로 성폭력 상담소에 회비를 납부했다.

1심 법원은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해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벌금 3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검찰은 형이 가볍다며 항소했지만 2심 법원은 이와 별개로 해당 사건이 피고인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명령 및 고지명령에 대한 판단을 누락했다는 이유로 직권으로 원심을 파기하고 다시 판결했다.

그런데 2심 법원 역시 “피고인이 성폭력 예방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수강하고 성폭력상담소에 정기후원금을 납부하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해 동일한 벌금 300만원 선고를 유예했다.

성폭력 가해자가 형을 가볍게 받을 목적으로 성폭력상담소에 일방적으로 후원금을 내고 이후 법원 제출용 영수증을 요구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전국 126개 성폭력상담소를 대상으로 재판 제출용 목적으로 한 후원 사례를 접수받은 결과, 지난 2015년부터 지난 8월초까지 성폭력 가해자의 관련 내용 문의 사례가 101건이 있었다고 14일 밝혔다.

김미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성폭력 가해자 측의 기부 제안 형태는 대부분 상담소에 직접 전화해 기부방법을 문의하거나, 변호인을 통해 문의하는 경우가 있었다. 재판 과정 중 일반적 기부자들처럼 홈페이지에 공개된 후원계좌에 직접 납부하거나 소액의 정기후원을 신청하고 후원하다가 재판이 결정되는 대로 후원을 중지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밝혔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측은 “일부 가해자들은 판결 뒤 상담소에 후원금 일부를 환불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현재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후원을 받지 않고 있다. 기부 전 기부 영수증을 즉시 발급해줄 것을 요청받는 경우 ‘상담소는 가해자가 성폭력 재판 과정에 있으면서 후원 감경을 목적으로 하는 기부금을 받을 수 없다’고 대응하고 있다. 기부 직후 기부 영수증 발급을 요청받는 경우에는 상담소가 후원자가 발급 사유를 묻는다.

이날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폭력 가해자의 일방적인 후원, 기부는 양형 참작이나 감경 요인에서 배제돼야 한다”며 “그것은 반성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가해자들은 단체에 후원해 반성했다는 것을 보여 감경받고자 한다”면서 “이는 현행 양형기준의 감경요소인 상당금액 공탁 및 진지한 반성의 영향이 크다. 우리는 이런 후원활동과 기부금은 진정한 반성이 아니라고 보며 피해자가 원치 않는 경로로 피고인들이 감형을 받는 것을 적극 반대한다”고 말했다.

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정하경주 소장은 “성폭력 가해자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로 감형돼 집행유예가 되는 사례들이 부지기수”라며 “성폭력 범죄는 처벌받지 않거나 처벌 받더라도 정당한 사유 없이 감형 받을 수 있다는 사회적 공기의 형성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한 문제제기를 묵살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이날 기자회견 직후,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가해자의 일방적인 후원·기부를 감경요인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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